묵상 19, 에스더 3:8~9, 만 달란트 쯤은 쿨하게 쓸 수 있는 사람
19.
25.2.17(월)
에스더 3:8~9
8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에게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다스리시는 왕국의 여러 지방에 널리 흩어져 사는 민족이 하나 있는데,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삽니다. 그들의 법은 다른 어떤 백성들의 법과도 다릅니다. 더욱이, 그들은 임금님의 법도 지키지 않습니다. 임금님께서 그들을 그냥 두시는 것은 유익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9 임금님께서만 좋으시다면, 그들을 모두 없애도록, 조서를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저는, 은화 만 달란트를 임금님의 금고출납을 맡은 관리들에게 주어서 입금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만 달란트 쯤은 쿨하게 쓸 수 있는 사람
아하수에로 왕은 성대한 잔치를 벌이며 3년이나 대대적으로 전쟁을 준비했지만, 결국 그리스 침공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높은 권세와 명예는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막대한 국고를 탕진했습니다. 하만은 바로 그런 때에 등용이 되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정계에 입문했지만, 모든 대신 보다 높은 자리에 올랐고, 대궐문을 드나들 때마다 사람들에게 절을 받았습니다. 그런 예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가 왕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그럼 누가 진짜 왕일까요?
하만은 왕에게 없는 돈이 있었습니다. 그냥 좀 부자였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의 재산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너무 미웠고, 그중에서도 특히 모르드개라는 사람을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는데, 왕에게 자기 말대로 법을 하나 만들어주면 돈을 주겠다면서 제시한 금액이 무려 은화 1만 달란트입니다. 물론 그것을 당장에 주겠다는 건 아니었고 추후 입금 제안이었지만 말입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페르시아의 연간 조세 총수입은 금 14,560 달란트였습니다. 금의 가치가 대략 은의 14배 정도 되니까, 하만이 왕에게 제시한 금액은 금 750달란트 정도입니다. 총 조세수입의 5%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오늘날 은 시세로 따지면 5천억 원이 훨씬 넘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정말 싫어하는데, 그 사람들을 좀 없애는데 5천억 원 정도는 전혀 아깝지 않다는 그런 사람 본 적 있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한 비유가 생각납니다. 마태복음 18:23~34에 나오는 만 달란트 빚진 사람의 비유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이 비유에 등장하는 만 달란트 빚진 사람의 역사적 모델이 하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빚을 져보셨습니까? 빚을 져본 사람은 압니다. 그것이 얼마나 지옥 같은 족쇄인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진 빚은 무려 만 달란트나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달란트는 금의 단위를 말하는 것이었으니, 이 사람의 빚은 그야말로 계산하기도 어려운 천문학적인 규모입니다. 하지만 왕은 그의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렇게 큰 은혜를 받고도 나가서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나더니 멱살을 부여잡고 내 돈 갚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나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곤 합니다. 나의 죄도 금 만 달란트나 될 만큼 큰 것인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 죗값을 대신 치르셨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내가 얼마나 큰 빚을 탕감 받았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만 같은 사람입니다.
하만은 교만이 끝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하수에로의 교만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재력을 과시하며 사람들을 깔보는 사람입니다. 마치 하늘에서 땅을 바라보듯 무시합니다. 그리고 부르를 던져 점을 볼 때, 바로 그 앞에 섰던 사람입니다. 부르는 점치는 주사위 같은 것인데, 이것은 신의 뜻을 묻는 도구였기 때문에 부르는 신 앞에서 던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서 3장에서 사람들은 부르를 하만 앞에서 던졌습니다. 하만이 신이라는 뜻입니다.
스스로를 믿고 자신을 자랑하고 때때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올라가 신이 되려는 사람, 그게 바로 하만, 그게 바로 어쩌면 나, 하지만 그런 나를 용서해 주고 품어주고 회복시키시고 겸손케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하루를 겸손하게 살길 기도합니다.
주님,
예수님의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이야기가 그냥 비유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역사 속에 일만 달란트를 과시하며 자기 교만을 드러냈던 사람이 있었음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런 하만 같은 사람까지 용서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 나와 같은 사람을 용서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나의 교만을 깨뜨리고 주님의 겸손을 배울 수 있길 원합니다. 이 하루를 주님과 겸손하게 동행하며 살도록 도와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