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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10, 마가복음 10:46~52, 제자는 누구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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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10, 마가복음 10:46~52, 제자는 누구인가?

보이지않는교회 2025. 4. 3. 08:37

10.

25.2.6(목)

마가복음 10:46~52

46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 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49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눈먼 사람을 불러서 그에게 말하였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50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제자는 누구인가?

마가복음 8장에 나오는 벳새다의 눈먼 사람 이야기와 10장의 바디매오 이야기는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되는 이 문학적 기법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곤 합니다. 세 번에 걸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메시지를 눈먼 사람들의 치유 이야기가 감싸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단순히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앞의 이야기에서 벳새다의 눈먼 사람은 두 번에 걸쳐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앞을 보기는 보았지만 사물을 뚜렷하게 분간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사람이 보이는 것 같은데 나무 같은 것들이 보인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의 눈을 다시 만지자 그는 곧 시력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뒤의 이야기인 오늘 바디매오 이야기에서는, 눈먼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류하고 조용히 하라고 다그쳐도 그는 더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의 이 고백에는 자기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 그리고 예수님과 자신에 대한 관계의 고백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더욱 놀라운 부분은 그가 예수님을 통해서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자기의 길로 가지 않고 곧장 예수님의 길을 따라나섰다는 것입니다.

제자는 누구일까요? 예수님 곁에 있는 바로 그들입니다. 하지만 진짜 제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제자는 예수님을 통해서 다시 보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다시 보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고 있느냐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의 방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이고 그가 무엇을 하시는가를 봐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세 번에 걸쳐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바로 그것, 곧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제자가 봐야 할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의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또 제자는 보게 된 이후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사람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얻었으니 “이제는 내 볼 일을 봐야겠다”가 아니라, “이제부터는 예수님이 길을 따라가야겠다”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는 이 믿음의 길로 초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한 부자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자신은 모든 율법의 가르침을 잘 따르면서 살아왔는데, 또 무엇을 해야 하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이 말 때문에 근심하면서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이 사람의 이야기는 눈먼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는 제자의 모습과 참 다릅니다. 눈먼 사람에게 앞을 보는 것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에게 있어서 영원한 생명의 가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과 저울질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무게였고, 그래서 포기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인해 주어지는 구원 곧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로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감히 내가 가진 모든 것 또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저울질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조차 될 수 없는 압도적인 것입니다. 제자는 그 귀한 것을 선물로 받은 사람이기에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 왔다가 실망하여 되돌아갔습니다. 그들이 그 소망을 얻었던 얻지 못했던 그들의 중심은 자기 자신에서 조금도 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지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심이 되어 주십시오. 우리의 소망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며, 그가 왜 우리의 그리스도이신지를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이 작은 하루의 삶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되도록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