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siblechurch 님의 블로그

묵상 8, 마가복음 8:22~26, 반쪽짜리 본문

그저 묵상

묵상 8, 마가복음 8:22~26, 반쪽짜리

보이지않는교회 2025. 4. 2. 22:19

8.

25.2.4(화)

마가복음 8:22~26

22 그리고 그들은 벳새다로 갔다. 사람들이 눈먼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려와서, 손을 대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23 예수께서 그 눈먼 사람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 두 눈에 침을 뱉고, 그에게 손을 얹으시고서 물으셨다. "무엇이 보이느냐?"

24 그 사람이 쳐다보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는 다시 그 사람의 두 눈에 손을 얹으셨다. 그 사람이 뚫어지듯이 바라보더니, 시력을 회복하여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26 예수께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시며 말씀하셨다. "마을로 들어가지 말아라."

반쪽짜리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에는 한 가지 명확한 모티프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의 ‘무지’입니다. 그들은 분명 예수님의 부르심을 통해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많은 기적을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여러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좀 아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제자들은 모두 핵심을 놓치고 맙니다.

나병 환자를 치료하고,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잠잠케 하고 또 바다를 걸어서 오시고,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제자들은 겉으로는 “와~” 감탄사를 내뱉으면서도 속으로는 ‘대체 예수님이 누구시길래…?’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장면에 와서도 반복됩니다. 방금 전에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을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했습니다(8:32). 베드로의 입장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진정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알면서도 실상은 알지 못하는 모습,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실상은 자기의 방식대로 믿다가 실망하는 모습, 앞을 보기는 보는 것 같은데 온전하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 바로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은 오늘 이 이야기 속, 예수님이 벳세다에서 만났 던 어느 눈먼 사람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두 번 손을 얹으셨습니다. 한번 만졌더니 그는 무언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무엇이 보니냐고 물으니까, 그가 사람이 보이는데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번엔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러자 맹인은 시력이 온전하게 회복되어서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곧바로 베드로는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답변했지만, 질문에 비해 대답은 한없이 가벼운 반쪽짜리였습니다. 제자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마가복음의 방식대로 답을 찾기 위해선 적어도 10장까지 묵상을 이어가야 합니다.

“예수님 믿으세요?”라는 질문에 “네”라는 대답을 쉽게 들을 수 있지만,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지식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 알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 알고, 부활하신 것도 압니다. 하지만 만일 믿음이 단지 예수님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에 답하는 것이라면, 그건 반쪽짜리 시력입니다. 예수의 운명이 대체 나의 운명과 무슨 관계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셨고, 왜 그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왜 나는 그의 부활을 믿으면서 세례를 받는지 참되게 고백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앞을 보기는 보아도 뿌옇게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자신의 기대를 하나님께 투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의심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것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의 자기 확신, 그런 방향성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은 그 반대 방향입니다. 우리의 기대와 확신을 내려놓고, 우리의 이해와 경험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기대와 확신 그리고 하나님의 이해와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막 8:3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주님,

저의 믿음이 앞을 온전히 보는 사람과 같기를 원합니다. 큰 믿음도 있고 작은 믿음도 있고 또 강한 믿음도 있고 약한 믿음도 있을 텐데, 크고 작고 또는 강하고 약하고가 아니라 작아도 그리고 약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똑바로 볼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을 주십시오.

아멘.